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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프로젝트

동방 캐릭터 이름의 유래 고찰 - 수왕원

손 비텐 / 손미천 孫美天 Son Biten

 

손오공의 호 미후왕(美猴王, 비코오)과 제천대성(斉天大聖, 세이텐타이세이)에서 한 글자씩 딴 것 같다.

 

天으로 끝나는 이름을 쓴 건 아마 드래곤볼의 손오천(孫悟天)의 영향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손오공의 후계니까.

 

이름 발음이 비텐과 미천으로 갈리는데, 설정상 손오공 흉내를 내는 일본 요괴(사루가미)이므로, 일본식 이름으로 취급해서 ‘손 비텐’으로 쓰는 게 원칙적으로는 맞겠다. 비텐의 보스인 吉弔八千慧도 길조 야치에가 아니라 킷초 야치에로 부르고, ‘중국풍 이름이다’고 명시된 달토끼들의 이름도 영선, 청란, 영호가 아니라 레이센, 세이란, 링고라고 부른다.

 

(사실 가장 유사한 케이스는 세키반키이다. 종족은 일본 요괴인 로쿠로쿠비이지만, 이름은 명백히 중국의 비두만(飛頭蛮, 히토반)을 의식한 중국식 이름인 赤蛮奇로 지어져 있다. 하지만 ‘적만기’로 번역하지 않고 ‘세키반키’로 번역된다)

 

하지만 드래곤볼의 손 고쿠도 손오공으로 번역된 역사가 오래 되었고, 동방 번역이 언제나 원칙을 따랐던 것도 아니니, ‘손미천’으로 정착되었다면 이를 따르지 못할 이유도 없기는 하다.

 

 

 

 

미츠가시라 에노코 三頭慧ノ子 Mitsugashira Enoko

 

미츠가시라(三頭)는 한자 그대로 삼두, 즉 머리 세 개를 뜻한다.

 

여기서 ‘가시라’는 머리를 뜻하며, ‘아타마’에 비해 약간 예스러운 표현이다. 한국어 ‘우두머리’와 비슷하게 조직의 수장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쓰이는데, 특히 야쿠자 조직에서 와카가시라(若頭)는 두목 다음가는 지위, 즉 부두목을 뜻한다.

 

三頭는 음독하면 산즈(さんず)라고도 읽을 수 있다. 끔찍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은 이름이지만…… 일단은 삼도천의 삼도(三途)와 발음이 같다. 어느 쪽이든 지옥과 연관이 있다.

 

에노코(えのこ, 狗)는 그 자체로 강아지를 뜻하는 단어이다. OO코로 끝나는 발음이 여자 이름처럼들리기도 해서 채택된 것 같다.

 

케르베로스 치고는 귀여운 이름인데, 실제로 케르베로스라는 이름은 어원이 명확하지 않으나, 여러 가설 중에는 그냥 생김새나 울음소리에서 착안하여 ‘얼룩이’나 ‘멍멍이’에 준하는 의미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하는 주장도 존재한다.

 

에노코는 현재는 코이누(子犬)에 밀려 그다지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지만, 강아지풀을 뜻하는 에노코구사(狗尾草)라는 단어에 남아 있다. 강아지풀은 삼추(三秋)의 계어이기도 하다.

 

어쨌든 종합하면 미츠가시라 에노코라는 이름은 케르베로스를 가리키는 삼두견(三頭犬)을 약간 뒤틀어 지은 작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텐카진 치야리 天火人ちやり Tenkajin Chiyari

 

성은 종족명인 텐카진을 그대로 가져왔다.

 

여기서 저 天火人이라는 한자 표기는 이 요괴의 목격담을 최초로 채록한 ‘여행과 전설(旅と伝説)’이라는 책에서 사용된 한자 가차 표기이며, 실제로 ‘텐카진’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불명이다.

 

다만 예전부터 일본 각지에서 목격된, 하늘에서 도깨비불이 나타나는 현상을 텐카(天火)라고 불렀기에, 그것의 영향일지 모른다는 추측은 가능하다.

 

텐카진의 정체는 요괴 백과사전 등에는 너구리(狢, 무지나)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수왕원 발매 이후 현지 동방 팬덤의 검증 결과 이는 위의 ‘여행과 전설’ 원문에 나와 있는 담비(貂, 텐)를 오기한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참조 https://twitter.com/hyousen/status/1693838943006175590)

 

(동방 설정에서도 ‘정체는 너구리라고 하나 실제로 본 사람들은 모두 너구리라 생각지 않는다’는 설정이 기재되어 있는데 ZUN은 혹시 이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일까?)

 

이를 고려해보면 텐카진의 텐은 天이 아니라 貂일 수도 있는 셈이다.

 

이름은 피가 든 주사기에서 연상해서 피 묻은 창을 뜻하는 치야리(血槍)를 그대로 쓴 것으로 보인다.

 

발매 당시에는 몽시공에 나왔던 치유리와 헷갈리는 사람이 많았는데 수왕원이 몽시공의 후계 위치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의외로 의도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싶다. 마침 보스인 유마도 유메미와 발음이 얼추? 비슷하고.

 

 

 

 

요모츠 히사미 豫母都日狭美 Yomotsu Hisami

 

모티브가 된 요괴 요모츠시코메는 ‘고사기’에서는 豫母都志許賣(요모츠시코메), ‘일본서기’에서는 泉津醜女(요모츠시코메), 별칭 泉津日狭女(요모츠히사메)로 표기되는데, 동방의 요모츠 히사미는 이 명칭들을 조금씩 섞은 것 같다.

 

여기서 豫母都志許賣 등은 모두 요모츠시코메(よもつしこめ)라는 발음을 나타내기 위한 한자 음차 표기로 한자 각각의 의미와는 상관이 없다. 이를 ‘만요가나’라 부르며 우리나라 신라 때 쓰인 향찰 문자와 원리가 유사하다.

 

요모츠에 쓰인 豫 자는 현대 일본어로 표기할 때는 주로 신자체인 予 자로 바꿔 쓰는데 ZUN은 고문서에 쓰인 대로 豫 자를 그대로 썼다. 그만큼 예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동방에는 이렇게 일부러 구자체를 쓰는 경우가 더러 있다).

 

요모츠의 ‘요모’는 ‘요미’라고도 하며, 일본어 고어로 황천, 즉 저승을 뜻한다. 어원은 산스크리트어 Yama에서 왔다는 설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즉 시키 에이키의 직책명 ‘야마자나두’의 야마와 유래가 같은 것이다. 한편 都로 음차된 ‘츠’는 ‘~의’를 뜻하며 ‘아마츠카미’, ‘쿠니츠카미’의 츠와 같은 뜻이다. 지금의 ~노(の)와 쓰임이 같다.

 

‘히사메’는 어원은 밝혀지지 않은 듯하나, 집 안채와 외부를 나누는 공간을 뜻하는 히사시(庇, ひさし)와 같은 어원이라는 설이 있다(한옥으로 치면 대청마루가 있는 곳에 해당). 즉 경계선을 지키는 여자 정도로 풀이할 수 있을까?

 

종족명에서 시코메(醜女)는 일반적으로는 한자 그대로 추녀로 해석되지만, 여기서 시코(醜)의 의미는 사실 하나로 단정짓기 어렵다. ‘못생기다’가 아니라 ‘꺼려지다’, ‘거칠다’, ‘이질적이다’ 등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오니(鬼)를 뜻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참조 http://kojiki.kokugakuin.ac.jp/shinmei/yomotsushikome/)

 

ZUN이 이름에 아름다움을 뜻하는 美를 박아둔 것은 아마 그녀를 추녀로 해석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이유인지도 모른다.

 

 

 

 

 

닛파쿠 잔무 日白残無 Nippaku Zanmu

 

히사미와 마찬가지로,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 니치하쿠 잔무(日白残夢)에서 한자 한 글자만 바꿨다.

 

잔무의 호 日白의 독음은 다른 서적에는 주로 니치하쿠(にちはく)로 나오는 듯한데, 오에노 마사후사가 지은 ‘본조신선기전’에는 닛파쿠(にっぱく)로 쓰여 있다. ZUN은 후자의 발음을 따른 것 같다.

 

모티브인 잔무(残夢) 대사의 이름은 한자 그대로 잔몽, 즉 못다 이룬 꿈을 뜻한다. 여기서 꿈(夢)을 빼고 무(無)를 넣었다.

 

우선 無라는 한자의 선택이나 잔무의 허무를 다루는 능력은 잔무 대사가 무무(無々)라는 승려와 허무에 대한 논쟁을 했다는 일화에서 따온 듯하다. 이 무무는 이름도 이름이거니와 실존인물인지 다분히 의심스럽기도 한데 ZUN은 잔무 대사와 무무를 동일인물로 보고 잔무(残無)로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잔무의 설정, 즉 전국시대에 세상의 무정함을 깨닫고, 인간성을 잃고 인외의 존재가 되었다는 그녀의 배경을 생각하면, 그녀의 작명은 원래 꿈(夢)을 지닌 존재였으나 지금은 허무(無)에 천착하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풀어볼 수 있다.

 

수왕원에서 이러한 잔무와 대비되는 존재는 바로 레이무이다. 레이무는 영몽(靈夢), 즉 영험한 꿈이다. 잔무는 레이무를 보고 ‘예전의 자신과 닮아 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작중에서 레이무는 모든 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관리하려는 잔무와 대비되어, 모든 것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둘 뿐이지만 자연스럽게 밸런스를 유지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주제에서는 약간 벗어나지만) 둘의 대비는 둘의 능력에서도 다루어진다. 잘 알려진 레이무의 능력은 하늘을 나는 정도의 능력(空を飛ぶ程度の能力)인데, 여기서 하늘을 뜻하는 소라(空)는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잔무는 허무를 다루는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데, 허무와 공은 둘 다 비어 있어 없는 것을 뜻하지만 철학적 의미는 조금 다르다. 동방 원소재 위키에 정리된 것을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불교에는 허무와 공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공은 색즉시공의 공이다. 이 둘은 유사한 개념으로 알려져 있어 차이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알기 쉽게 말하면

 

깨달음의 의미에서

허무는 ‘일체의 집착을 버린 무(無)의 상태’≒모든 것에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것

공은 ‘일체의 집착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

 

성질로서의 의미에서

허무는 ‘헛되고 아무것도 없는 것’

공은 ‘실체를 갖지 아니하는 것’

 

이를 토대로 하면, ‘허무를 다루는 정도의 능력’의 잔무와 ‘하늘(空)을 나는 정도의 능력’의 레이무는 불교에서 말하는 ‘허무’와 ‘공(空)’의 대비가 이루어진 캐릭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잔무와 레이무의 대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수왕원 오마케에 기재된 ZUN의 제작 후기에서 대략적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AI가 상징하는 완전성, 무기질성, 결과론적 사고에 반하여, 불완전성, 유기질성, 과정의 중요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생물이다, 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AI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짐승들 쪽이 오히려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삶을 실감할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런 환상이 담긴 것이, 이번 작품의 테마입니다.

 

 

한편, 사실 ‘꿈’은 수왕원의 선대격 작품인 몽시공에서 시작되어, 신작 초기까지 유지된 동방의 주요 테마이기도 했다. 그리고 수왕원의 부제에 들어가 있는 Unfinished Dream과, 이례적으로 등장한 구작 시절에 대한 언급이 나온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ZUN만이 알 것이다.

(이에 관해 읽어볼 만한 글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touhou&no=2322555)

 

 

마지막으로, 잔무의 이름이 ‘귀멸의 칼날’에 나오는 ‘키부츠지 무잔(鬼舞辻無慘)’과 비슷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잔무를 오니로 해석한 걸 보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ZUN이 무잔에서 영감을 얻었을지도 모른 휘침성 신묘먀루에 진격거 네타를 넣은 전적도 있으니 ZUN도 의외로 인기작은 챙겨 보는지도……